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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여즐상/춈덕's 독서 여행

저승사자와 싸우는 아이.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

by 춈덕 2023.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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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으로 즐기는 세상

독서여행

 

 

"협심증입니다. 지금 당장 응급실로 내려가셔서 검사받으세요."

 

명절 마지막날 가슴과 등이 아프다는 어머님이 동네 병원을 갔다 큰 병원을 가보라는 진단서를 받아 오셨어요. 다음날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는데, 어머님의 검사 결과를 보신 의사 선생님께서 즉시 어머님을 응급실로 내려가라 하십니다. 진료실을 나와 응급실로 향하니 이미 응급실에서는 어머님을 맞을 준비가 끝나 있었어요. 의료진이 어머님을 침대에 눕히고 몸에 여러 기계를 달기 시작했어요.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분들이 분주히 침대를 오가며 어머님의 상태를 검사하고 확인합니다. 응급실에 입원 후 3시간 만에 시술실로 들어가신 어머님. 약 40분 후 교수님께서 저를 부르셨고, 어머님의 상태에 대해 설명해 주십니다. 다행히 어머님은 혈관에 스텐트를 넣지 않고, 약물로 조절이 가능하다 하셨어요. 그제야 하루종일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은 풀어집니다.

 

일반 병실로 올라가기 위해 수속을 밟는 동안 응급실에 있어야 했어요. 어머님께만 신경 쓴다 몰랐던 응급실의 풍경이 이제야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끝없이 응급실 문을 오가는 구급대원들과 환자들. 그리고 이들을 재빨리 인수인계받는 의료진들. 그중 간호사분들은 쉴 틈 없이 이 침대, 저 침대를 오고 가길 반복합니다. 생명을 구하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는 간호사분들을 떠 올리며 읽은 책이에요.

<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 / 김현아 지음 / 아를 출판 >

 

 

"저승사자와 싸우는 아이"

 

병원에서 근무 중인 저자를 보며 할머님께서 하신 말씀으로 책에서 가장 인상이 남는 부분이었어요. 중환자실에서 근무한 저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생과사를 넘나드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아침에 멀쩡히 출근했는 사람이 10시간 만에 영안실로 내려가기도 하고, 때론 심장이 멎은 사람을 심폐 소생술로 겨우 살리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희망론자가 되기도 하고 회의론자가 되기도 했다는 저자.

 

중심을 잡고 현실에 집중해야 하는 간호사에게 희망론과 회의론을 따진다면 정작 눈앞의 환자에게 집중을 못할 수도 있습니다. 잠깐의 실수로 환자의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는 직업이 간호사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마음대로 잘 되지 않아요. 겨우 중심을 잡고 있지만, 마음은 언제나 위태하고 힘이 듭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자는 심장이 멈춘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실시합니다. 환자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할 때, 그녀의 옆을 지켜보던 할머님께서 저자에게 저승자와 싸우는 아이라 말을 합니다.

 

할머니의 말을 듣는 순간, 저자는 더 이상 회의론과 희망론을 고민할 필요가 없음을 깨닫습니다. 생사를 오가는 환자를 눈앞에 두고 희망론이니 회의론이니 하는 생각을 하는 자체가 시간 아까운 행동인 것이죠.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현장에서 저자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기로 합니다. 오로지 자신의 눈앞에 있는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 자신의 사명임을 깨닫고 앞으로 나가기로 합니다.

 

P90

"네가 바로 저승사자와 싸우는 아이로구나."

내 모습을 한참 동안 옆에서 지켜보던 한 할머니가 두 눈가로 흘러내린 땀을 닦아내고 있는 나에게 말씀하셨다. 그 순간, 그동안 희망론자와 회의론자를 오가던 중심 없던 마음이 가슴 아래로 묵직이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 나는 내 환자들을 지키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 그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희망과 회의 사이를 오갈 시간조차 아까웠다. 할머니의 그 말씀은 아주 오랫동안 가슴에 남았고 나는 내 환자들을 위해 정말로 '저승사자와 싸우는 간호사가 되어 갔다.

 

 

게임 스타크래프트의 확장팩으로 브루드워가 발매되었을 때 인간 종족인 테란에 구세주가 나타났어요. 생체 유닛을 치료하는 메딕의 등장이었죠. 유닛의 피가 1이라도 줄어들면 자동으로 근처의 메딕이 달려와 손을 뻗어 유닛을 치료해 줍니다. 이외에도 모든 게임에 없어서는 안 될 치유사를 '힐러'라 불러요. 마법의 힘으로 빛이 번쩍하면 상처가 치유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해요.

 

오히려 현실에 가까운 내용이라면 영화 "라이언일병 구하기"가 아닐까는 생각이 들었어요. 포탄과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수많은 병사가 쓰러져 갑니다. 총알이 몸을 관통해 구멍이 나거나, 포탄에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기도 합니다. 그런 병사들에게 의무병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총알구멍 뚫린 몸을 거즈로 막고, 모르핀을 주사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결국 병사들은 죽게 됩니다. 영화 역시 너무 잔혹한 장면은 연출할 수 없지만, 이 정도도 이미 충분히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주긴 충분했어요.

 

병원의 중환자실과 응급실이 전쟁터와 같지 않을까요? 하루에도 몇 번이나 생과사를 오가는 현장이기에 수많은 환자가 이곳을 거쳐갑니다.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의료진은 환자의 상처와 전쟁을 벌입니다. 생리식염수를 쏟아부어가며 상처를 씻어내고, 거즈로 피를 닦아내고 상처를 소독합니다. 피로 얼룩진 거즈와 피가 흥건한 바닥은 영락없는 전쟁터입니다. 잠깐의 실수가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 곳에서 의료진은 언제나 전쟁 중인 것이었어요.

 

의료진이 대단하는 생각도 들면서도 걱정도 되었어요. 매일 이렇게 피를 보고, 수많은 생명의 생사를 지켜보며 자신의 삶을 산다는 것은 보통 정신력으로는 어렵겠구나는 생각이 들더군요. 누군가는 이젠 그런 모습은 무덤덤하다 하지만, 그 무덤덤하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직업병이면서도 마음의 병이 들어 그런 것이 아닐까는 생각도 조심스레 해봤어요. 매 순간 감정적으로 대할 수 없는 곳인 만큼 스스로 마음을 굳게 먹고 직업에 임해야 하는 곳인 만큼 치열한 직업의 모습을 보며 존경을 표해봅니다.

 

P276

몇 사람이 그녀에게 달라붙어 수십 통의 생리식염수로 상처를 씻어내고 또 몇 사람이 달라붙어 몇 통의 빨간 소독약을 상처에 들이부었다. 그녀의 자리르 들어 올릴 때마다 뼈 없는 연체동물의 긴 다리를 들어 올리듯 서너 명이 손을 합쳐야 했다. 발목은 수시로 돌아가 고정하지 않으면 발꿈치가 하늘로 돌아 누웠다. 치료의 풍경은 마치 전쟁을 연상시켰다. 피와 물과 소독약이 한데 뒤섞여 폭포처럼 바닥에 쏟아져 내렸고, 피 묻은 거즈들이 사방에 널렸다. 그녀는 그 전쟁 속에서 총 맞고 쓰러진 사람처럼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 깨어나기를 반복했다.

 

 

2019년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덮쳤을 때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방역체제를 구축한 곳이 한국이라 했어요. 어떻게 처음 겪는 이런 상황을 이토록 빨리 대처할까는 생각이 들었는데, 우리는 이미 메르스라는 거대한 병마와 한 번 싸운 적이 있었다는 것을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어요. 메르스의 경험을 바탕으로 코로나를 대비한 것이죠.

 

2015년 KBS 방콕지국 카메라맨으로 근무했어요. 주 업무는 동남아시아의 소식을 뉴스나 프로그램으로 제작해 한국으로 송출하는 일이었죠. 하루는 사무실 TV에서 한국의 메르스 사태에 대해 보도되기 시작했어요. 낙타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는 등 뭔가 익살스러운 느낌의 뉴스였죠.

 

"아, 한국에선 메르스 때문에 지금 혼란스럽구나."

 

 딱 이 정도의 느낌이었어요. 한국을 넘어 태국에도 메르스 환자가 발생합니다. 취재를 위해 태국 병원도 다녀왔죠. 하지만, 현지에서 느낀 메르스에 대한 분위기는 그렇게 심각하지 않았어요. 그저 일종의 감기 정도로만 취급했던 것으로 제 기억 속에 남아 있었거든요. 그런데 책을 읽을수록 메르스라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저자가 근무한 병원에서 메르스 환자가 발생하고 코호트 격리와 모두가 잠정적인 보균자라는 틀을 안고 지내는 모습의 글을 읽을수록 얼마나 외로우면서도 처절하게 병마와 싸웠을까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떻게 보면 저는 처음 맞는 코로나로 마스크가 익숙지 않았지만, 의료진들에게 마스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어요. 더구나 이미 메르스를 통해 겪은 만큼 코로나에 대한 대비도 어떻게 보면 다른 나라보다 빨랐던 것이 아닐까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속에는 누구 보다 앞장선 의료진과 서로를 배려한 대한민국 국민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전히 코로나는 종식되지 않았지만, 병원과 약국에서도 코로나 격리에 대한 규제도 완화되고 있는 것을 뉴스를 통해 접하고 있어요. 그런 만큼 간호사분들과 다른 의료진들도 근무환경기 조금씩 나아지고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

 

지금도 간호사분들의 업무에 대해 반도 모르지만, 이 책을 읽기 전엔 더욱 몰랐어요. 책을 읽을수록 간호사라는 직업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아, 힘드시겠군요.'라고 이해한다듯 말을 한 제 자신이 부끄러워졌어요. 잘하면 원래 간호사의 일이라는 말을 듣고 못 하면 많은 비난을 받아야 하는 직업인 것 같아요. 물론, 다른 직업들 역시 존중받아야 함은 마땅해요.

 

그래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라는 직업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명감도 있어야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직업인 것 같아요. 인력 부족과 처우개선 등의 여러 문제로 여전히 논의되는 현실. 사람인만큼 한계가 있을 것이고 그 한계는 실수가 되면 사람의 생명과 이어지는 직업인 만큼 주변에서 관심을 가져 줘야 하지 않을까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도 생사의 전선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간호사와 의료진에게 감사의 인사와 용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P68

간호사도 사람이다. 사람이니 한계가 있다. 그 한계는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이다. 단지 혼내는 것만으로도 부족해 온몸을 불살라 '활활 태우는' 일만이 간호사가 환자의 목숨을 지키는 방법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알고 있는 걸까.

 

P295

간호사란 직업은 끝까지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환자들을 열심히 돌보면 돌볼수록 점점 자괴감이 커져가는 직업 같았다. 어쩌면 자괴감이란 무슨 일이 있어도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끝까지 해낸 사람들만이 느끼는 감정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P303

간호사는 환자를 지키는 사람이다. 환자를 지키기 위해 저승사자와 싸우는 사람이다. 그래서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한 사람이다. 그 누구도 갑자기 사고를 당하고 병에 걸리는 삶의 변덕을 피해 갈 수 없다. 이것이 간호사의 존재와 일을 존중해 주어야 하는 이유이며, 그들의 용기를 꺾는 일을 더더욱 용납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간호사가 살아야 비로소 환자도 살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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