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으로 몰디브를 다녀왔어요. 블로그에 올릴 사진을 선별하고 몰디브여행의 추억을 떠 올리며 정리하다 보니 몰디브 여행기는 업데이트가 늦어요. 그래도 덕분에 다시 한번 몰디브의 추억에 빠져볼 수 있어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답니다. 그리고 오늘은 몰디브 여행 3일 차 이야기입니다.
몰디브의 3일 차 아침 역시 날씨가 화창했어요. 간밤에 비가 많이 내렸는데, 신기하게 아침만 되면 이렇게 예쁜 하늘을 볼 수 있더라고요. 매일 이런 풍경을 보며 일어나면 좋을 텐데,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뭔가 아쉬움도 밀려옵니다.
"엇, 두둠칫이다!"
조식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걸어가던 중 발견한 이 녀석. 이 섬에 사는 새입니다. 주로 새끼들을 보는데 날지 않고 길 위를 열심히 뛰어다녀요. 앙상한 다리의 이 녀석을 찾아보니 <왜가리> 종류인 듯했어요. 하지만 새끼는 너무 귀엽게 도도도 뛰어다니는 모습에 아내와 제가 부르는 별명은 "두둠칫"입니다. 사람만 보면 후다닥 도망가 가까이서 보기 힘든 녀석이에요.
몰디브 여행 3일 차 아침은 가볍게(?) 빵과 죽으로 시작합니다. 요즘 아침에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아 대부분 빵으로 해결하는 날이 많아요. 몰디브에서도 아침은 빵을 먹었는데, 이날은 오랜만에 추억의 음식이 보여 함께 가져왔답니다.
동남아시아의 음식 중 하나인 "콩지"입니다. 한국에서 주로 아플 때 미음으로 먹는 흰 죽과 같아요. 한국에선 주로 참기름만 넣죠? 동남아시아에서는 일종의 식사로 여기에 닭고기나 돼지고기, 마늘, 땅콩, 파 등 본인의 기호에 맞게 토핑재료를 넣어 먹는 음식이랍니다.
콩지를 한 입 떠 입에 넣으니 예전 방콩에서 살던 기억이 났어요. 저는 KBS 방콕지국의 카메라맨으로 2년간 태국에서 살았거든요. 태국과 함께 동남아시아 곳곳을 카메라에 담아 소식을 전하는 것이 저의 역할이었답니다. 출장을 가면 3~5일은 현지에서 보내는 만큼 조식은 필이 숙소에서 해결해야 그날 하루 부지런히 움직일 수 있었어요.
가끔은 입맛이 없을 때가 있는데, 이때마다 찾은 음식이 바로 콩지입니다. 웬만한 동남아시아 숙소에선 이 콩지가 꼭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 콩지에 닭고기와 파를 넣어 가볍게 아침을 먹었던 적이 많았어요. 흰 죽이다 보니 한국을 생각나게 만드는 음식이기도 했거든요. 한국에 돌아온 후 콩지를 먹을 일이 없었는데, 몰디브에서 이 음식을 보니 꽤 반가웠답니다.
콩지를 입에 넣으니 2년간 태국의 추억이 스쳐 지나갑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2년의 시간을 태국에서 지내며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곳곳을 카메라에 담았던 20대 시절이 더욱 그리워진 아침입니다.
아침을 먹고 있는데 식당 한쪽이 소란스럽습니다. 아침 산책길에 본 두둠칫 녀석의 어미새가 식당으로 들어왔거든요. 이 섬의 터줏대감답게 식당을 아무렇지 않게 활보하는 녀석.
꼿꼿하게 서 있으면 사람 허리보다도 높아 무서운 느낌마저 드는 녀석입니다. 식당 손님들의 웅성거림에 직원이 다가와 어미새를 쫓아냅니다. 하지만 필사적으로 도망가지도 않고, 식당 주변을 유유히 돌아다니는 녀석. 아무리 터줏대감이라지만 식사시간만은 존중해 달라고요.
조식을 먹고 숙소에서 잠깐 휴식을 취한 후 옷을 갈아입고 다시 밖을 나왔어요. 몰디브 여행 3일 차 오전 일정으로 <스노클링>을 잡아뒀거든요. VARU Atmosphere는 숙박객들에게 오전과 오후 각각 한 시간씩 무료 스노클링 체험을 제공해요.
바다를 너무 좋아해 매일 하고 싶지만, 다른 일정도 많아 3일 차가 되어서야 참가하게 된 스노클링입니다. 숙소에서 배를 타고 약 10분 정도 이동해 스노클링 포인트에 도착했어요. 섬에서 멀어질수록 바다색이 더욱 예뻐지는 것이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 그 자체입니다.
배가 스노클링 포인트에 도착하자 가이드의 지휘에 맞춰 스노클링 참가자들 모두 바다로 뛰어들었어요. 오리발부터 물안경, 대롱 등 모든 장비는 숙소에서 무료 대여해 주기에 신경 쓸게 없어요. 그냥 열심히 물놀이에만 신경 쓰면 되는 몰디브 여행이에요.
저와 아내는 물놀이를 정말 좋아해요. 신혼여행을 몰디브로 선택한 이유도 물놀이를 원 없이 하기 위해서였죠. 그중에서도 바닷속의 모습은 아무 곳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스노클링을 엄청 기대했어요.
오리발과 대롱을 달고 고개를 물속에 넣으니 새로운 세상이 눈앞에 펼쳐졌어요. 에메랄드 바닷물 속으로 수많은 물고기가 발아래에서 헤엄치고 있었거든요. 바위 곳곳에 숨는 물고기부터 주변을 유유히 헤엄치는 녀석까지. 물속을 보고 있으니 절로 노래가 나옵니다.
"언더더씨~"
열심히 물고기 구경을 하는데, 가이드가 이쪽으로 오라 소리치며 손짓을 했어요. 바다거북이가 나타났데요. 이제껏 스노클링을 하면서 바다거북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그것도 이렇게 가까이서 물속에 있는 바다거북을 볼 줄이야!
바닥을 헤엄치며 뭔가를 먹고 있는 거북이를 모두가 숨죽여 바라봅니다. 가이드가 우리에게 다가와 말했어요.
"너희 오늘 오후에 바다거북 스노클링 안 해도 되겠어!"
이날 오후에 바다거북 스노클링 프로그램을 신청해 뒀었거든요. 바다거북 스노클링은 무료 스노클링 프로그램과 달리 유료예요. 하지만 바다거북이가 항상 있다는 보장이 없어 거북이투어 신청 당시 가이드도 참고해라 했는데, 오전에 거북이를 본 덕분에 오후 유료 거북이 스노클링은 바로 취소했답니다.
1시간 정도 스노클링을 즐긴 후 다시 섬으로 돌아와 수영장의 선베드에 누워 일광욕을 즐겨봅니다. 오전에 함께 스노클링에 참가했던 투숙객들도 하나, 둘 수영장에 자리 잡아 몰디브의 여유를 함께 만끽했어요.
몰디브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돈은 1도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먹고 놀고 쉬었던 것이에요. 운전할 일도 없으니 아침부터 선베드에 누워 모히또 마시며 나른한 오전을 즐겼답니다.
일광욕을 얼마나 즐겼을까요? 문득 저 멀리 바다에서 시커먼 구름이 몰려오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아, 이젠 구름만 보면 알아요. 언제쯤 비가 올지를요. 비가 내리는 것이 훤히 보이는 몰디브의 스콜이 또 다가오고 있어요.
10월의 몰디브는 '우기'입니다. 비가 자주 오는데요, 짧게는 5분에서 20분으로 억수 같은 비가 퍼부었다 그치기를 반복해요. 얼마나 자주 오는지 아내와 새벽부터 잠들기 전까지 헤아려 봤어요. 전날 새벽부터 그날 밤까지 비가 온 횟수가 최소 10번이었어요. 그만큼 비가 자주 오는 우기시즌의 몰디브예요.
하지만 그 스콜도 잠깐, 어느새 하늘은 언제 비가 내렸냐는 듯 맑은 하늘이 나타나요. 그래서 몰디브에서 비가 온다 해 우울해질 필요 없어요. 조금 있으면 금세 비가 그쳐 맑은 하늘 아래서 여행을 즐길 수 있거든요.
비가 한바탕 쏟아지고 나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어요. 3일 차의 점심은 공용 식당은 Chilly & Lime에서 뷔페로 해결했답니다.
식당에서 만들어주는 핫도그와 피자 그리고 인도네시아 음식인 미고랭 등 든든하게 점심을 먹어줍니다. 오전 스노클링 덕분인지 벌써 배가 고파졌거든요. 먹고, 놀고, 쉬는 게 전부인데도 몰디브에선 어찌 그렇게 쉬지 않고 먹었던지,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던 음식들이었어요.
몰디브여행 3일 차 오후 일정은 마음껏 섬 둘러보기였어요. 섬을 그렇게 둘러봤지만, 사실 다른 목적지를 가기 위해 걷다 보니 섬을 제대로 둘러본 적이 없더라고요. VARU 숙소 곳곳에 예쁜 사진 포인트도 많은데, 저희는 논다고 바빠 사실 사진도 거의 찍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이날은 점심을 먹고 오후 프로그램 전까지 섬을 둘러보며 함께 사진을 찍기로 했어요.
예쁜 바다와 하늘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고, 또 걷고 또 사진을 찍으며 오후 시간을 보내 봅니다.
"몰디브 여행은 3일쯤 되면 할 게 없어서 너무 지겹더라."
몰디브를 다녀온 친구가 제게 했던 말이에요. '도대체 왜?'라는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어요. 저흰 몰디브 3일 차가 되어도 아직 해보지 못한 게 너무 많았거든요. 이 보고, 즐길거리가 많은 곳이 왜 심심하다는 것인지, 하다 못해 가만히 있어도 그저 좋았던 몰디브였거든요.
문득 그 생각이 들었어요. 만약 20대의 나였다면 친구와 비슷한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고요. 20대에는 이런 휴양보다 무조건 액티비티에 참가해야 했어요. 잠깐의 휴식도 용납하지 못할 정도로 여행은 바쁘게 돌아다니고 프로그램에 참가해야 했거든요.
하지만 요즘은 이렇게 하고 싶으면 하고, 오늘 안되면 내일, 아니면 다음에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여행을 하다 보니 여유가 많아졌어요. 그래서 여행이 조금은 더 편해졌을지도 몰라요.
저녁을 먹기 전, 숙소 프로그램 중 하나로 배 위에서 노을 구경과 함께 낚시를 즐기는 선상낚시인 "Sunset Fishing"에 참여했어요. 가끔 친구들과 경북 포항으로 낚시를 가곤 하는데요, 배에서 낚시라니 한껏 기대하며 배에 올랐답니다.
숙소에서 약 10분 정도 배를 타고 나와 포인트에서 1시간 정도 낚시를 진행하는 VARU Atmosphere의 프로그램인 선상낚시. 하지만 출발 때부터 날씨가 심상치 않았어요. 흐린 데다 바람도 강했던 이날 오후. 그래도 일단 배는 출발해 봅니다.
Sunset Fishing은 낚싯대가 아닌 플라스틱릴에 줄을 감은 줄낚시였어요. 낚싯줄을 멀리 던질 필요 없이 배 바로 아래로 미끼를 달아 줄을 내리면 되거든요. 하나, 둘 배 밑으로 줄을 내렸고 저 역시 줄을 내려 봅니다. 줄을 내린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가이드가 줄을 모두 걷어라 소리쳤어요.
"폭우가 오고 있어! 낚시 못해! 우리 돌아가야 해!!"
가이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배에 있던 직원들이 번개 같은 움직임으로 철수준비를 했어요. 저 멀리 시커먼 먹구름이 보이기 시작했고 이내 스콜이 내리기 시작했거든요. 육지 위의 스콜보다 바다 위에서 맞은 스콜은 정말 무서웠어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퍼붓는 빗물이 얼굴을 때릴 때마다 정말 따가웠어요.
파도도 높고, 배도 심하게 흔들리자 한껏 긴장될 수밖에 없었어요. 다행히 배는 빠르게 숙소가 있는 섬에 도착했어요. 그사이 배에 탔던 관광객은 모두 비에 흠뻑 젖었답니다. 스콜의 무서움을 다시 한번 느낀 순간이었답니다.
아쉽지만, 선상 낚시는 이렇게 종료되었어요. 어쩌겠어요. 날씨가 따라주지 않으니 방법이 없죠.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맑던 하늘인데 순식간에 비가 왔다 또 순식간에 비가 그치는 곳이 몰디브예요.
아쉬울 수도 있지만, 또 그렇게 아쉽지도 않았어요.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몰디브를 즐겼거든요. 이 부분이 아내와 참 잘 맞는 것 같아요. 어차피 안 되는 것 스트레스받으며 짜증 낼 필요 없어요. 이런 풍경도 어찌 보면 추억이고, 나름의 기억이거든요. 몰디브에서의 마음가짐은 딱 하나예요.
"이 또한 지나가리."
언제 비가 왔냐는 듯, 밤이 되자 비가 금세 그쳤어요. 3일 차 저녁은 뷔페가 아닌 스페셜 디너를 먹는 날이라 섬에 있는 수상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답니다.
몰디브 VARU Atmospheres는 기본적으로 뷔페를 제공하지만, 신혼여행 패키지를 신청한 저희는 스페셜 런치와 디너, 그리고 허니문 디너를 숙소에서 제공해 줬답니다. 스페셜 디너는 코스요리로 분위기를 내며 먹을 수 있어 좋았답니다.
즐거운 낮 시간을 보내고 분위기 있는 저녁으로 마무리한 몰디브 신혼여행 3일 차로 절반이 지나가는 날이었어요. 아직 해보지 못한 것도 많고, 즐길거리도 많은 곳인데, 벌써 내일이면 마지막날이라니 아쉬움이 점점 커지는 몰디브 3일 차의 밤이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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