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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제껏 기다리게 했으면서 이제 와서 못 온다니! 장난치냐? 너 다시는 연락하지 마!"
20대 초반 시절, 친구와 약속을 잡아 놓곤 가지 않은 적이 있어요. 친구 집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는데, 친구집에 가기 전에 다른 약속을 잡았었거든요. 그리곤 이쪽에서 노느라 그 친구와의 약속 시간을 계속 미루었죠. 그러다 결국 친구에게 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친구에게 욕을 먹었죠. 전화기 너머 화난 친구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그 친구와의 연락은 끊겼습니다.
당시에는 그냥 사소한 약속인데 왜 그렇게 화를 내냐며 오히려 저도 화를 냈던 기억이 문득 나더군요. 그 후 그 일을 잊고 지내다 최근 그 생각이 다시 나더군요. 이제야 그 친구에게 정말 미안하고 무례한 행동을 했었다는 것을 떠 올렸던 것이죠. 사람 사이에선 예절과 신뢰가 중요한데, 그러지 못한 20대의 철없는 시절을 반성하며 읽게 된 책입니다.
<논어 / 공자 / 김형찬 옮김 / 홍익출판사>
(24쪽)
'인'이란 글자 그대로 '두 사람(二人), 즉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를 뜻한다. 공자는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는 사람들 사이의 가장 이상적인 관계를 통하여 사회의 안정을 추구했고, 이를 상징하는 개념으로 인을 사용한 것이다. 그리고 예(禮)를 통해 인의 실현을 이루려 하되, 그러한 인의 사회를 이룰 수 있는 근거를 효(孝)라는 자연적 본성에서 찾았다.
약속도 깨고, 오히려 함께 화를 냈는 제 모습을 보면서 친구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저는 그 친구에게 평생 약속을 지키지도 않고, 예의도 없는 사람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젠 저라는 사람을 잊어버렸을지도 모르죠. 10대, 20대 때에는 인간관계를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굳이 이 사람 아니라도 된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나?' 등 인간관계를 가볍게 생각해 몇 번 문제가 있었던 것이 최근 떠 오르기 시작했어요. 주민등록증만 받은 성인이지, 철이 없어도 너무 없던 시절을 보냈더군요.
우리는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학업이든, 직업이든 결코 혼자 일할 수 없이 누군가와는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죠. 하지만 이 관계를 맺기 위해 신뢰가 필요한데, 예절과 매너에서 시작됩니다. 하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은 신뢰 쌓기, 사소한 말과 행동 하나에도 절친에서 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얼마 전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친구의 직장 신입 사원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왜 요즘 애들은 모르면 모른다고 안 해? 처음 일을 시킬 때 모른다 했으면 알려줬을 텐데, 당시에는 안다고 했으면서 결국은 일 처리를 하나도 못해 내가 뒤처리 해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라고!"
이런 일이 발생하면 함께 일하는 동료가 힘들어져요. 본인 업무만으로도 바쁜데, 타인의 실수까지 처리해줘야 하는 것도 한두 번이죠. 한 번의 실수는 눈 감아 줄 수 있지만, 상황이 반복된다면 더 이상은 실수가 아니에요. 업무 관계를 떠나 인간관계에서도 문제가 발생하게 되어요.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것, 저 역시 예전에 그랬던 적 있어요. 하지만 따끔한 충고를 들은 후에는 이 버릇을 고쳤어요.
2010년, 워킹홀리데이로 호주 호텔에서 근무했던 적이 있어요. 당시 영어 실력이 많이 부족해 업무 시 단어 몇 개만 듣고 유추해 일을 했던 적 많았어요. 그러다 보니 실수가 많았는데,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싫어하는 눈치를 보였어도 모른 척했던 경우 많았어요. 어느 날 새로운 매니저가 오게 되었고, 이 매니저는 제게 따로 업무 지시를 했어요. 제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는데, 이를 본 매니저가 묻더라고요.
"재키, 솔직히 말해봐. 내 말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지?"
너무 뜨끔했어요. 솔직히 알아듣지 못했다 했죠. 이를 본 매니저가 천천히 하나씩 다시 설명해 주더라고요. 제가 또 이해하지 못하면 상황을 풀어 설명해주면서 업무를 이해시켜 줬어요. 그렇게 업무 지시가 끝난 후 매니저가 했던 말은 아직도 잊지 못했고,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면 지금도 떠 올리곤 합니다.
"재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야. 넌 외국인이니 당연히 모를 수밖에 없어, 오히려 네가 모른다는 말을 해줘야 우리가 더 쉽게 널 이해시켜주고 함께 일을 해결해 갈 수 있어. 그래야 일도 빨리 끝나고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어. 물론, 너도 업무가 끝난 후 영어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했으면 해. 그렇게 해야 우리가 서로 도울 수 있는 관계가 되잖아. 알겠지?"
그 당시 많은 한국 유학생이 소통의 어려움으로 이해하지 못한 상황을 웃음으로 넘겨버린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모르는 것이 있으면 상대가 나를 무시할지 모른다는 그런 생각에서 나온 습관일지도 몰라요. 다른 분들은 모르겠지만, 저는 그런 마음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매니저와의 대화 후 저는 주변에게 조금 더 솔직해지기로 했고,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죠.
그 후 저는 이해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하면 꼭 물어봐서 그 상황을 이해하려 했어요. 그날 몰랐던 단어나 업무들은 꼭 메모해 뒀다 집에 와서 공부하며 영어실력과 함께 업무에 능력을 향상했어요. 그때 만든 습관은 지금도 남아 있고, 여전히 필요시에 행동을 하게 되더라고요.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에요.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에요.
(41쪽)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유야! 너에게 안다는 것에 대해 가르쳐 주랴?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아는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저도 모르게 경건한 마음이 들었어요. 다른 것 보다 글귀 하나하나가 도덕책의 표본이었죠. 이 바른 삶을 살기 힘든 것이 우리 삶인 것 같았어요. 배려 보단 이기심이 우선이 되어야 하고, 바른 길 보단 쉬운 길을 택하고 싶으며, 자신의 고집만 생각하는 그런 삶을 살았던 일이 많았던 것 같더라고요. 그 이유가 전부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어요.
책의 내용 중 공자께서 군자에 대해 말씀하신 부분이 있어요. 군자에 대한 생각으로 오늘의 글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184쪽)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에게는 항상 생각하는 것이 아홉 가지가 있다. 볼 때에는 밝게 볼 것을 생각하고, 들을 때는 똑똑하게 들을 것을 생각하며, 얼굴빛은 온화하게 할 것을 생각하고, 몸가짐은 공손하게 할 것을 생각하며, 말을 할 때는 진실하게 할 것을 생각하고, 일을 할 때는 공경스럽게 할 것을 생각하며, 의심이 날 때는 물어볼 것을 생각하고, 성이 날 때에는 뒤에 겪을 어려움을 생각하며, 이득 될 것을 보았을 때에는 그것이 의로운 것인가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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