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으로 즐기는 세상
경상북도
ll 50년 전통 할매횟집
송대말등대와 감포항남방파제까지 모두 둘러보고 나니 식사시간이 되었어요. 바다에 왔으면 회를 먹어야죠. 감포항 주변에 횟집이 많아 아무 곳이나 들어가도 되지만, 여행 출발 전 책에서 미리 확인해둔 《할매횟집》으로 이동했어요. 저는 주로 여행 떠나기 전 여행책자에서 정보를 얻는 편이에요. 책에 소개된 곳은 웬만하면 실패 확률이 낮은 만큼 여행 시에 발생하는 스트레스 줄일 수 있거든요.
경상북도 경주시 감포읍 전촌리 635. 전촌리는 감포항에서 차로 5분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2차선 도로를 따라 이동하다 도로변에 파란 슬레이트 지붕의 단층 건물이 나타났어요. 50년 전통 원조 할매횟집이라는 커다란 현수막까지 붙어 있어 모르고 지나치긴 어렵겠더라고요. 도로변에 있는 건물이라 주차장은 따로 없지만, 대신 식당 맞은편 폐교 운동장에 주차 가능하더라고요.
ll 과거로의 시간 여행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간 가게는 마치 시간 여행을 온 듯한 기분이 듭니다. 석유난로 위의 온기 있는 주전자와 예전 목욕탕 가면 자주 보던 정사각형의 흰색, 하늘색의 타일이 붙은 선반. 50년간 자리를 지켜온 식당의 티가 나는 곳입니다. 겨울철이라 그런지 가게 안은 살짝 서늘함이 느껴져 난로 옆쪽에 자리 잡았어요. 가게 그렇게 넓진 않아요. 입구 바로 앞의 마루에는 3 테이블이 있고, 그 뒤 작은 방에는 4개의 테이블이 있는 식당이에요.
ll 횟밥이 4천 원 더 비싸
"가격이 올랐네"
저희와 같이 들어온 다른 테이블의 손님은 이곳에 몇 번 오셨나 봅니다. 메뉴를 보시곤 같이 온 친구분에게 가격이 올랐다며 낮게 말씀하셨어요. 회국수(14,000원), 횟밥(18,000원). 저도 인터넷으로 검색했을 땐 이 금액이 아니었는데, 최근에 가격을 올리신 거 같더라고요. 아마 물가와 임금 상승 영향이겠죠. 내 월급 빼고 모든 게 오른다는 요즘, 밥 값도 예외는 아니죠. 이날 저희는 회국수와 횟밥을 하나씩 시켰어요.
"횟밥은 국수보다 회가 더 많이 들어가 4천 원 더 비싸"
할머님께서 횟밥이 회국수보다 비싼 이유를 말씀해주십니다. 갑자기 할머님이 왜 이런 말씀을 하시나는 생각이 들었는데, 가게 검색을 하다 어떤 블로거가 '왜 횟밥이 더 비싼지 모르겠다'는 글을 본 적이 있어요. 할머님께서 인터넷을 하셔서 그 글을 보셨을 수도 있고, 아니면 식당을 찾은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말을 들으셨을지도 몰라요. 국수에서 밥으로 바뀌었는데 4천 원이 비싸게 되면 손님은 괜히 찝찝함을 가질 수 있을 거예요.
찝찝함이 남는다면 만족한 곳이라도 부정적인 느낌이 남을지 몰라요. 사장님께서 회를 많이 주셨어도 이를 말씀하시지 않았다면 손님은 국수나 밥이나 회의 양은 똑같은데 횟밥은 더 비싸다 생각할 수 있겠죠. 하지만 납득을 하게 되면 만족도만 남게 됩니다. 별거 아닐 수 있는 한 마디이지만 손님에겐 그 가게의 인상을 바꿀 수도 있죠. 할머님께서는 알고 하신 말씀이신지, 아니면 손님들의 말씀이 신경 쓰여 습관적으로 하신 말씀이신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찝찝함 없이 식사할 수 있었답니다.
ll 세꼬시 회무침
한동안 주방에서 덜그럭 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잠시 후 테이블 위로 식사 메뉴들이 하나씩 올라옵니다. 가장 먼저 테이블에 올려진 메뉴는 회무침. 아마 따로 서비스를 주시는 것 같아요. 미나리, 양파에 참기름과 양념을 조금 넣은 회무침. 초고추장을 넣어 슥슥 비벼 한 젓가락 먹어봅니다. 입속에서 가시가 오도독 씹히는 이맛. 세꼬시 회무침이었어요.
어릴 적 저는 회를 잘 먹지 못했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어릴 적에는 비린 음식은 더 못 먹었거든요. 거기에 세꼬시는 회에다 가시까지 있어 어린 저에겐 기피 음식 1순위였죠. 씹기도 힘들고, 가시가 목에 걸릴까 무서워 함부로 먹지도 못했던 이 녀석을 어른들은 뭐가 맛있다고 드시는지 이해 못 했었죠. 하지만 요즘은 비린 음식도 그렇고 세꼬시도 어렵지 않게 먹고 있어요. 세꼬시는 회와 달리 연한 가시를 오도독 씹는 맛이 있더라고요.
알게 모르게 변하는 제 모습을 보면 어느덧 저도 나이가 들었구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콩국수도 먹고, 세꼬시도 먹으면서 어릴 적에는 몰랐던 맛과 경험을 받아들이고 알아가고 있어요. 세상 모든 일이 그렇지 않을까 해요. 처음에는 낯설고 어렵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지거나 또는 경험을 통해 달라지고 적응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곤 합니다.
ll 탱탱한 면발의 회국수
회국수와 횟밥이 나왔어요. 반찬이라고는 말하기 무안한 쌈채소와 마늘, 고추, 장국을 함께 준비해주십니다. 하얀 윤기가 가득한 소면과 파릇한 녹색빛의 신선함이 가득한 미나리가 듬뿍 올려진 회국수를 먼저 먹어봤어요. 할매횟집의 회국수는 참가자미가 들어간 비빔국수입니다. 가게에서 직접 만드셨다는 초장을 기호에 맞게 뿌려 소면과 채소가 고루 잘 섞이게 비빈 후 회국수를 한 젓가락 가득 입에 넣어봅니다.
탱탱한 소면이 입안에서 씹히는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어요. 여기에 미나리의 아삭함과 참가자미회의 쫄깃함이 더해지니 완벽한 식사 한 끼가 됩니다. 왜 이곳에서 회국수를 먹어야 하는지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소면이 나오기까지의 시간은 조금 걸릴 수 있지만, 세꼬시 회를 먹고 있으면 그렇게 오래 기다리는 것도 아니에요.
국수는 너무 오래 삶으면 면이 퍼져버리고, 짧게 삶으면 면이 딱딱해져 어느 쪽이든 먹기엔 불편해요. 알맞게 삶은 면은 쫄깃함과 탱탱함이 있어 먹는 이를 즐겁게 해 줍니다. 면이 알맞게 삶기기 위해선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 기다림을 참지 못하면 맛있는 면을 먹을 수 없게 되죠.
우리도 똑같지 않을까요. 어떤 일을 하거나 결과를 기다릴 때 그 기다림을 지키지 못해 화를 초래하거나 후회하는 경우가 있어요. 저 역시 그런 경우가 많았는데, 대부분 조급했던 경우가 많은 것 같더라고요. 그 기다림의 시간을 잊기 위해 집중도 필요하지만, 때론 화재를 전환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다른 주제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그 시간이 찾아오기도 하죠. 국수를 기다리는 동안 세꼬시로 손님의 기다림의 시간을 잊게 해 주듯요.
ll 참가자미회
회국수 보다 회의 양이 많아 4,000원 더 비싼 횟밥. 언뜻 보기에도 회 양이 국수보다 훨씬 많아 보입니다. 소면 대신 그 자리를 참가자미회가 차지했고, 국수와 마찬가지로 신선한 미나리가 듬뿍 올려져 있어요. 공깃밥은 따로 주시는데 양에 맞게 덜어 비벼 봅니다.
할매횟집 회국수와 횟밥의 회는 참가자미를 쓴다 합니다. 참가자미라는 말을 듣는 순간 무조건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몇 년간 회를 많이 먹었더라고요. 특히, 참가자미의 맛을 알아 회덮밥, 물회 등 식사류는 거의 참가자미를 시킬 정도로 참가자미에 빠졌어요. 두툼한 두께와 쫄깃함 덕분에 식감이 좋은 참가자미. 할매횟집의 횟밥과 회국수 역시 참가자미의 매력에 다시 한번 빠져봅니다.
ll 시골 향 가득했던 시간
쌈채소 위에 마늘, 고추, 그리고 횟밥을 올려봅니다. 그리고 쌈장을 조금 넣어 쌈을 만들어 한 입 가득 넣어봤어요. 고추와 마늘의 매콤함과 초장 향이 입안 가득 퍼집니다. 쌈장은 가게에서 직접 담은 장인지 일반 시중 쌈장과 맛이 확연이 달랐어요. 사장님께 여쭤보진 않았는데, 메주향이 특히 강한 것 같더라고요. 먹을수록 점점 강해 진듯한 메주향. 전형적인 시골 쌈장의 맛이랄까요?
어릴 적 할머니 댁 작은 방 천장에는 항상 메주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어요. 구릿한 메주향을 좋아하지도 않았을뿐더러 그 방만 다녀오면 옷은 물론, 온몸에서 메주 냄새가 베이는 듯해 할머니 댁 가면 그 방 근처는 얼씬도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조부모님께서 모두 돌아가신 후 시골집은 처분되어 더는 그런 풍경을 볼 수 없게 되었어요. 어릴 적에는 왜 그렇게 시골의 그런 풍경과 냄새가 싫었던 것일까요. 이제는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모습들, 괜히 밥을 먹으며 철없고 어렸던 저와 시골의 모습을 떠 올려 봅니다.
감포 전촌 할매횟집
▶ 위치 : 경북 경주시 감포읍 동해안로 2044
▶ 영업 : 매일 10:00 - 21:00
▶ 문의 : 054-744-3411
▶ 주차 : 가게 건너 폐교 주차장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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